
여느 주말처럼 거실은 딸아이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득, 아이의 손에 들린 태블릿에서 눈을 뗄 수 없었죠. 화려한 앱들 사이에서 잠시 길을 잃은 듯한 아이의 얼굴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 기술이 우리에게 정말 행복을 가져다주는 걸까?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기술과 삶의 균형은 어디쯤일까, 하고 말이죠.
기술, 정말 우리를 자유롭게 할까요?

‘Getting Unstacked’. 최근에 읽은 글에서 본 이 표현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스택(stack)처럼 쌓여가는 기술적 과업들에서 벗어나는 것. 개발자로서 효율과 속도에 매몰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지만, 때로는 그 기술의 무게에 짓눌려 지치기도 하죠.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빠른 솔루션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기술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고민하던 인문학적 IT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딸아이의 그림판이 가르쳐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날 딸아이는 코딩 교육 앱 대신 그림판 앱을 켰습니다. 서툰 손으로 무지개를 그리고, 가족의 얼굴을 그렸죠. 제가 만들어준 자동 색칠 기능을 쓰는 대신, 일부러 삐뚤빼뚤하게 선을 채워나갔습니다. ‘아빠, 이게 더 재밌어!’라며 웃는 아이를 보며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저는 효율적인 도구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과정 자체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던 겁니다. 기술은 정답을 빠르게 찾아주지만, 삶의 여정은 때로 정답 없는 길을 헤매는 즐거움으로 채워지니까요. 이런 경험을 통해 인간 중심 기술의 가능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결과물을 위해 과정을 생략하곤 합니다. 하지만 딸아이의 서툰 그림은 결과보다 과정이, 효율보다 교감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걸까요? 더 편리한 도구의 사용법일까요, 아니면 그 도구를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는 즐거움일까요?
일상 속 ‘따뜻한 기술’을 위한 작은 실천법은?

대단한 변화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기술 앞에서 잠시 멈춰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딸과의 경험 이후, 저 역시 몇 가지 작은 습관을 만들고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과 삶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니까요.
- ‘왜’라고 질문하기: 새로운 기술이나 앱을 사용하기 전, ‘이것이 내 삶을 정말 풍요롭게 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 의도적으로 연결 끊기: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스마트폰 없이 아이와 눈을 맞추고, 산책하고,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디지털 디톡스는 관계를 회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 나만의 아날로그 시간 갖기: 코딩 대신 손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비효율적인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이런 시간들이 쌓여 기술의 홍수 속에서 나를 지키는 단단한 둑이 되어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기술과 인간 사이의 완벽한 조화가 아니라, 그 사이의 공간을 인정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여유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의 기술은 어떤 온도를 가지고 있나요?
Source: Humanist IT: getting unstuck, Uxdesign, 2025/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