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밤 식탁에서 본 그녀의 손동작이 아직도 선해요. 아이 과제 도와주던 태블릿을 닫고는 갑자기 공책 한 장을 꺼냈죠. AI 학습 프로그램이 알려준 삼국지 지도 대신, 손수 그린 지도로 아이들 머리를 맞대게 했어요. 한 손에는 디지털 펜, 다른 손에는 색연필을 쥔 이 시대 부모의 모습이 참…
아이가 AI에게 묻는 ‘왜’에 대한 우리의 대답
아이들이 인공지능 스피커에 질문하는 모습 보면 참 신기하죠. 어느 날 아들이 ‘구름은 왜 떠다닐까?’라고 물었을 때, AI가 과학적 설명을 해주던 그 순간. 그녀가 창문을 열며 ‘한번 직접 느껴볼래?’라고 말하는 모습이 생각나요. 알람 시계보다 30분 일찍 깨워 아이들과 안개 낀 공원으로 나갔던 아침. 손바닥에 맺힌 이슬 방울이 증발하는 걸 지켜보며 함께 내린 결론… ‘구름은 땅이 보내준 편지’라는 말에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던 그 표정. 기술이 줄 수 없는 걸 우리는 알고 있죠. 엄마 아빠의 손길로 전하는 지식에는 온도가 있다는 걸.
디지털 캔디보다 아날로그 수제 사탕
그녀가 시작한 ‘금요일 아날로그 데이’가 벌써 여섯 번째네요. 매주 금요일 저녁은 모든 전자기기가 잠드는 시간. 처음엔 아이들이 ‘심심해’라고 투정부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보세요, 지난주엔 빨래집게와 나뭇가지로 만든 공룡이 거실을 점령했더라고요. 화요일에 AI 드로잉 프로그램이 그려준 완벽한 공룡보다 훨씬 생동감 있었어요. 아이들 말대로 ‘엄마 표정 닮은’ 눈을 가진 공룡이었죠.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 완성도 높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함께 맺는 땀방울이 아닐까요?
알고리즘보다 먼저 읽어내는 눈빛의 언어
유투브 추천 알고리즘이 아이 취향을 완벽히 파악한 듯할 때가 있죠. 그런데 지난주, 아이가 영상 끝난 후 허전해하던 표정을 그녀가 한 번에 읽었어요. ‘너 지금 무언가 더 원하는 거구나’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손유희 놀이 시간. 어둠 속에서 손전등 빛으로 만드는 그림자 동화가 화면 속 캐릭터보다 훨씬 진했어요. 기술이 추천하는 콘텐츠와 아이가 진짜 원하는 건 종종 다르다는 걸… 그 차이를 읽어내는 건 부모의 마음이니까요. 밤마다 아이 침대맡에서 이어지는 ‘오늘의 한 문장’ 이야기가 말해주듯.
100개 AI 답변보다 중요한 한마디
아이 질문에 당황할 때가 있죠. ‘AI는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까?’ 같은 질문을 받으면 차라리 기계 답변을 듣고 싶을 때도… 그런데 그녀는 늘 달랐어요. 지난가을, 할아버지 떠나시고 아이가 ‘죽음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AI는 철학적 정의를 설명했지만, 그녀는 말없이 단풍든 산길로 아이를 데려갔어요. 떨어진 낙엽을 주워 보이며
모든 것은 돌아가는 법이란다
라고 말하는 그 모습. 디지털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생의 리듬을 느낄 수 있는 눈과 마음일 거예요.
디지털 파도 위에 띄운 우리 집 등대
우리 집 거실 구석에 작은 상자가 있어요. ‘비상용 아날로그 키트’라고 쓰인 이 상자에는 색종이, 진흙, 빈 병들이 들어있죠. 지난주 태풍으로 정전이 됐을 때 이 상자가 빛을 발했어요. 핸드폰 게임 대신 시작된 그림자 연극이 온 집안을 웃음바다로 만들더군요. 그날 저녁 그녀가 속삭인 말이 생각납니다. ‘기가바이트보다 마음에 오래 남는 순간을’. 기술을 배제하라는 게 아닙니다. 단지 우리 집 등대가 항상 인간의 온도로 빛나게 하자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