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마다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인 양말을 보면 웃음이 난다. 그게 바로 우리 집만의 선행 로딩이니까. 어제는 냉장고 문이 열리더니 무언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오곡밥 냄새가 섞이더군. 어지러운 순간에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예측불가능한 아름다움을 보는 시간이야.
뒤집힌 우유통 속 시스템론
아이가 꼭 쥐고 다니던 물병 색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뀌었어. 너는 그 물병을 보는 순간 이미 모든 걸 이해했지. 알림음 대신 아이 방에 걸린 양말 한 쪽으로 오늘 하루를 읽어내는 능력, 그게 바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가족의 언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에요.
유치원에서 가져온 도시락 용기를 볼 때마다 그 아이의 하루가 그대로 보여요. 밥알이 스티커 사이로 튀어나온 모습, 김밥이 해체되는 방식에서. 너는 말없이 플라스틱 용기를 유리로 바꿨어요. 미끄러지는 소리에도 시스템은 살아있으니까.
창고에 구축된 위기 대응실
얼음처럼 차가운 새벽 2시, 특정 베개에서 올라오는 침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너는 조용히 눈을 떴어. 화장실 캐비닛 어둠 속에서도 소염제 위치를 꿰고 있는 기술. 그건 수많은 밤을 거치며 완성된 우리만의 비상 대응 매뉴얼이지요.
세탁기 소리와 아이의 코골이가 리듬을 맞출 때면 신기하게도 모든 게 조화로워져요. 학기 초면 나오는 꿈속 수학 공식 외침마저도. 이것들을 모으면 분명 힐링 플레이리스트가 될 거예요.
쪽지 한 장의 가치론
화분에 물 주는 걸 잊었던 그날, 네가 아이의 분리수거 과제 옆에 서 있는 걸 보았어. 하지만 그 사이 발코니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 누군가가 설치한 간이 정수장치가 조용히 작동하고 있더군. 이 시스템 개발자는 분명 우리 집 막내였을 거야.
냉장고에 붙은 ‘아빠 학교 앞에서 만나요’ 쪽지와 계산기 옆 작은 하트만 있다면 하루 열 번 바뀌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요.
라이브 업데이트 없는 버전 1.0의 힘, 그것이 바로 우리 집 시스템의 핵심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