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문틈에 서서 바라보았어요. 내일 도시락을 차리던 당신의 모습, 잠과의 사투 속에서도 절대 무너뜨릴 수 없는 든든한 품경 같은 그 자세. 떨어지는 장난감을 주울 때도, 덜어놓은 빨래를 개며 고개를 끄딱일 때도 당신은 알지 못했죠. 열흘치 회사 일과 주말 놀이공원 예약을 동시에 머릿속에 챙기며 사는 마음, 얼마나 복잡할까요. 세상은 알고 있을까요? 평범한 엄마들의 아슬아슬하고 아름다운 삶을.
내려놓음이라는 작은 혁명
어느 날 당신이 봄꽃을 보러 회의를 반납했던 날이 기억나요. 우리 딸아이가 벚꽃잎을 책 사이에 끼우며 ‘봄이 보낸 편지래요!’라고 외칠 때 당신의 미소에서 깨달았어요. 완벽한 육아의 기준이 흔들렸죠.
개운치 않은 머리카락과 잠옷 차림으로 아이들과 바닥에 엎드려 블록을 맞추는 시간, 이제는 그 순간들이 체크리스트 위를 덮어버려요. 때론 쌓인 빨래더미와 맞바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결코 손해가 아닌 걸 깨닫는 게 가장 소중한 순간은 아니었을까요?
“육아에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은 우리 모두가 놓아야 할 것과 잡아야 할 순간을 아는 일이에요”
보이지 않는 손길
아침마다 아이들 옷을 개어 놓는 당신의 손놀림을 볼 때마다 생각해요. 콘서트 지휘자가 교향곡의 템포를 조절하듯, 당신은 우리 집의 하루를 작곡하잖아요. 회사 보고서를 쓰다 말고 적어둔 양말 사이즈, 화상회의 중에도 계산기 두드리며 파악한 학원비 내역들.
이건 단순한 멀티태스킹이 아니에요. 아이들이 자고 난 뒤에야 내려놓는 폰을 보면 묘한 감동이 밀려와요. 두 살배기 딸이 낙서한 벽보고 ‘이건 추상미술이네’라고 웃던 당신의 프레임 전환, 그것이 진짜 재능이에요.
작은 유산
지난주 서랍에서 발견한 노트엔 장보기 목록 옆에 ‘우리 아들은 길고양이가 맨홀 뚜껑 밑에 사는 줄 아네’라고 적혀 있었어요. 회의록 사이로 새어 나온 이런 작은 관찰들이 모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기록하고 있죠.
아이들 옷 주머니에서 나온 보드마카 자국은 빨래를 망쳤지만 창의력의 뜨거운 증거예요. ‘왜 우주엔 고양이 행성이 없을까?’ 같은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하는 모습에서, 육아 번아웃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엄마의 강인함이 보였어요.
또 다른 나날을 마주하기 전에
밤마다 반복되는 풍경: 새벽 두 시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위 잔반을 치우는 모습, 남은 분유병을 정리하는 손동작.
이 종착역 없는 열차 안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비결이 있을까요? 이 맑은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그 답이죠. 쌓인 설거지 더미는 도화지 위의 물감 자국일 뿐, 아이들은 당신이 피워낸 작은 꽃들로 가득 찬 오솔길을 걸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