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일 오후 5시 47분, 항상 그랬듯 집안은 전쟁터 같았어요. 문앞에 뒹구는 책가방, 오븐에서 울리는 타이머, 녹아내린 크레파스를 두고 벌이는 울음소리. 그 소란 한가운데서 그녀가 스마트폰을 들고 멈춰 서 있더라고요.
‘어플이… 자동으로 승인했대.’ 그 목소리에는 안도감과 동시에 무언가 깎여나간 듯한 허기가 녹아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밤, 식은 차를 마시며 나눈 그녀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기계가 기억해주다니.’ 동의서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어요. 알고리즘에 넘기기 전까지 그녀 혼자 짊어져 왔던 수많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죠.
냉장고에 붙지 않은 장보기 리스트
AI가 우유가 떨어지면 자동 주문해주는 시대가 왔어요. 더 이상 그녀가 세 번 밑줄 그은 ‘계란!!!’ 메모를 볼 일은 없죠. 토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양념통을 확인하던 그녀 이제는 조금 더 잘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제 밤, 냉장고 앞에 서서 하얀 문짝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는 그녀를 봤어요. 종이 메모가 사라진 자리 말이에요. 이제 우리는 잊는 법까지 잊어버린 건 아닐까요? 예측 알고리즘에 사라진 종이와 펜으로 써내려가던 작은 기억들의 무게.
아이가 우는 소리에 정신없을 때 두유를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건 분명 축복이에요. 그녀의 상담사는 ‘머릿속 부담을 덜어준다’고 하더군요. 사소한 걸 기계에 맡기면 아이의 첫 흔들린 이를 더 잘 기억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왜 이 편리함이 안도감과 동시에 빈 허기를 남기는 걸까요?
알렉사만 기억한 생일 파티
그런데 말이에요, 예전엔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세요? 바로 그게 문제예요. 이제 모든 일정은 색깔별로 분류돼 기기마다 동기화되고, 파티 두 시간 전에 진동으로 알려줍니다.
지난주 트램펄린 파크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스마트워치가 살짝 울렸어요. ‘리암이 파티 시작 시간이에요.’ 주소를 확인하느라 단체 채팅을 하던 일, 밤중에 깨달은 선물 쇼핑을 위해 새벽까지 포장하던 일들은 사라졌죠.
뉴스는 AI가 ‘부모의 기억 공백’을 해결했다고 축하합니다. 하지만 준비 과정이 사라진 파티장을 둥둥 떠다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잃은 건 없을까 싶어요.
그녀가 어제 종이 달력에 날짜를 적어보더군요. 텅 빈 사각형 위를 천천히 움직이는 손가락 끝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알고리즘이 쓸 수 없는 잠자리 동화
이제 AI가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 주제를 기억해 추천해준대요. 187번째 읽는 ‘깽깽이의 달’을 아이와 함께 읽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효율적이진 않지만 반복 속에서 빛나는 게 있더라고요.
“무서운 깽깽이는 어디에~?”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부분, 정확히 그 타이밍에 아이가 넘기는 페이지. ‘중복된 정신 노동’이라 불리는 이 반복이 바로 사람다운 온기를 만드는 거죠.
어제 아침 우유를 쏟으며 울던 우리 아이, 그녀는 앱 없이도 화요일에 낮잠을 자지 못했던 게 원인이라는 걸 알아차렸어요. 기계는 데이터를 기억하지만 사람은 맥락을 기억하니까요.
기계에 맡기지 않을 것을 선택하는 법
최근 업데이트로 예방접종 일정을 자동 관리할 수 있게 되었어요. 활성화 버튼 위에서 맴도는 그녀의 손가락이 흔들리더군요. 기술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또 하나의 특별함을 내려놓는 게 서둘러서가 아니에요.
우리는 타협했어요. 병원 예약은 기계에 맡기되, 간호사 선생님이 낙서해준 예방접종 도장 수첩은 그녀 지갑에 남기기로요.
오늘밤, 우리는 작은 기억을 되찾는 실험을 해보려고요. ‘요쿠르트’를 ‘요구르트’로 잘못 쓴 장보기 리스트를 냉장고에 붙였더니 그녀가 며칠 만에 처음으로 웃었어요. 일주일 동안은 냉장고가 잊게 둘 거예요. 비 오는 화요일에 장바구니를 품에 안고 흠뻑 젖어 들어왔던 그날의 기억처럼, 인간다운 혼란 속에서 발견하는 소중함들을요. 이 작은 혼란 속에서야말로 진짜 우리 가족의 따뜻함이 빛나는 거겠죠. 함께 이 소중한 순간들 지켜나가요!
Source: You have to pay Claude to remember you, but the AI will forget your conversations for free, Techradar.com, 2025-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