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속 이야기가 실현되는 날을 바라며
아이가 유치원에서 가져온 그림을 보여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감동이 있죠. 종이 위에 선명해지는 하늘과 집과 꿈들. 그런데 아니, 정말 우리 마음을 직접 스치는 바람처럼 전해질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고요? 뇌파로 글자를 쓴다는 소식을 들으면 과학 소설 같지만, 벌써 실험실에서는 생각만으로 ‘사랑해’라는 문장을 완성한 사례가 있다고 해요.
어제 아이가 잠들기 전 속삭이던 말이 생각나네요. ‘엄마, 오늘 유치원에서 혼자 밥 먹었어요.’ 그 말에 숨은 자랑스러움과 서툰 외로움을, 기술이 우리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을까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흘린 그 미소 안에 담긴 온기를 어떤 기계가 다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동시에 이런 발전이 많은 이에게 희망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자라나요.
빠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을 것들
우리 집에서는 한국 전통과 캐나다 방식이 자연스럽게 blend되는 것처럼, 기술과 인간적 온기도 조화를 이루면 좋겠다 싶어요. 저녁 식탁에서 아이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때면 늘 고민이 깊어져요. ‘눈이 나빠진다’는 말에 아이는 투정 섞인 목소리로 ‘한 게임만 더’라고 조르죠. 멀지 않은 미래, 생각만으로 게임을 하는 세상이 온다면 이 대화는 어떻게 바뀔까요? 전문가들도 이 기술이 편리하지만 신중히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떠오르는 건 지난 주말, 공원에서 아이와 함께 풀숲에서 개미를 관찰하던 모습이에요. 그때의 호기심 어린 눈빛은 어떤 첨단 기술보다 소중하리라고 생각해요. 미래에 아이가 ‘아빠, 생각으로 개미랑 대화할 수 있어?’ 물어온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래도 네 손가락으로 직접 느끼는 게 더 따뜻하지 않을까?’
두려움보다 큰 기대를 안고

지난번 병원에서 본 장면이 생각나요. 휠체어에 앉은 아이가 뇌파 헤드셋을 쓰고 로봇 팔을 움직이는 재활 훈련을 하더군요. 그때 아이의 얼굴에 피어난 희망 찬 미소. 그 순간 기술이란 단어가 우리 집에서 논의하던 것보다 훨씬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작은 손을 잡고 산책하는 이 행복은 영원히 우리 것일 테니까요
우리 아이 방에 켜진 밤등 불빛 아래, 아이의 숨소리를 확인하며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곤 해요. 정말이지, 이 따뜻함만큼은 어떤 기술도 따라올 수 없어요! 우리가 아이에게 전해주는 이 사랑의 신호, 영원히 특별할 거예요. 10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게 있다면, 그것은 아이를 향해 흐르는 무한한 사랑의 파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오늘도 아이의 이마에 뺨을 비비며 전하는 그 체온이, 세상 어떤 인터페이스보다 정확한 사랑의 신호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