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회사에서 분기보고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고 했을 때, 그 표정에서 익숙한 피로를 읽었어. 숫자에 쫓기는 그 느낌, 나도 너무 잘 알지 뭐.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어. 만약 우리 아이들의 하루가 매일 ‘성과 평가’를 받는다면 얼마나 힘들까? 유치원 평가표의 ‘이번 달 학습 단어 수’에서부터 수학 문제 풀이 속도까지. 모든 걸 계량화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숨을 고를 수 있을까?
평가표에 적힌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

아이가 유치원에서 가져온 종이 한 장. ‘이번 달에 배운 단어 수’라고 적혀있을 때, 네가 살짝 먹먹해하던 모습이 떠올라. 마치 사내 공지의 ‘분기별 KPI’를 보는 듯한 그 표정. 하지만 정말 이상하지? 우리 아이의 성장은 30일 단위로 끊어질 리가 없다는 걸.
어떤 달은 말이 터지고, 어떤 달은 조용히 세상을 관찰하기도 하잖아. 그게 자연의 리듬인데 어른들은 왜 이리도 조급해질까?
퇴근 후에도 아이의 학습지 채점하다 지쳐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네 모습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 ‘이번 주에 뭘 배웠니?’라는 질문이 ‘1분기 실적 달성률은?’처럼 느껴지지 않게, 우리만의 속도를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지.
가족 웰빙 지표 재설정하기

토요일 아침. 아이들이랑 소파에 빌딩 블록을 쌓으며 아무 계획 없이 흘러보냈던 그 시간 기억해? 네가 커피를 들고 와서 ‘이렇게 비생산적인 거 불안하지 않아?’라고 속삭였을 때. 그게 바로 우리 안에 박힌 ‘분기별 압박감’이라는 걸 깨달았어.
진짜 가족의 건강은 숫자가 아니라 아이의 눈동자 반짝임으로, 저녁 식탁에서 오간 대화의 질로, 함께 폴짝폴짝 뛰어놀다 터진 웃음소리로 측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어제 네 품에 안겨 ‘엄마랑 지금 놀자’라고 조르던 그 순간이 우리 집의 ‘웰빙 지수 100%’를 알려주는 신호등이었지.
퍼즐 한 조각 대신 나무 관찰하기

회사에서 R&D 예산 이야기할 때처럼, 우리 가족만의 ‘미래 투자 계좌’를 만들자고 제안해볼까. 수학 문제 한 페이지 대신 공원 나무 관찰시간, 영어 단어장 대신 함께 만든 김밥 한 줄. 비록 결과는 바로 보이지 않겠지만, 이 투자는 분명히 10년 후에 빛을 발할 거야.
지난주 네가 중얼거렸던 말. ‘다른 애들은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아.’ 그 말에 잠시 숨이 탁 막혔어. 하지만 기억해? 우리 어릴 적에는 ‘뒤처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잖아. 모퉁이 가게 앞에서 구슬치기에 미쳐도 부모님이 ‘저거라도 하면서 잘 크네’ 하시던 시절. 그 여유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이 아닐까?
스마트폰 옆에 두고 찾은 15분의 기적

저녁 식사 후 네가 갑자기 휴대폰을 책상 밑으로 넣으며 ‘오늘 1시간은 의무 놀이시간!’이라고 선포했을 때. 아이들의 환호소리가 집 안 가득 퍼졌지. 계획 없는 15분 동안 벌어진 기적들: 예고 없이 시작된 춤 대결, 소파 위에서 펼쳐진 허풍선이 동화 만들기, 유리창에 비친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함께 했던 침묵.
‘쓸데없는’ 순간들이 가장 값진 보물이라고 하잖아. 우리 어릴 적 추억도 대부분 그런 장면들이었지. 네가 만들어주는 이 작은 빈틈들이 아이들의 창의력이라는 씨앗에 물을 주고 있다는 걸, 매일 볼 수 있어서 고마워.
씨앗 심는 마음으로
우리 부모님 세대는 다르셨지. 스마트폰 알림도 없이, 모든 게 느리게 돌아가던 시절. 그분들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기다림의 미덕’이었어. 지금은 패스트푸드 같은 육아 정보에 파묻히지만, 아이들 진짜 성장에는 여전히 인내가 가장 중요한 영양분이야.
네가 창가에 작은 화분을 들여놓고 아이와 함께 매일 씨앗을 관찰하던 그 프로젝트. 싹이 트기까지 2주가 넘게 걸렸지? 하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과정의 소중함’이라는 평생 갈 무언가를 배웠어. 우리 가족의 성장 보고서는 이런 사소한 순간들로 채워져 있어. 숫자로 잴 수 없는, 하지만 확실히 쌓이는 것들.
다음 분기가 아닌 다음 10년을 바라보며, 오늘도 우리 속도대로 걸어가자. 이 긴 여정을 함께 걸을 수 있어 참 든든해.
Source: The WSJ Got Quarterly Reporting Wrong: A Corporate Executive’s Response, Phil Mckinney, 2025-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