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아이를 재우고 부엽문 틈으로 스며드는 빛 속에서 그 모습을 봤어요. 내일 아침 도시락을 채우며 그대로 굳어 있는 어깨. 유치원 미술작품 반쯤 오린 상태로 놓인 가위, 화면 깜빡이던 업무 보고서, 침대에서 의자로 또다시 옮겨진 빨래 산. 그 순간 깨달았죠. 육아에서 가장 무거운 건 일 자체보다 ‘내가 다 해야 한다’는 그 맹세가 아니었는지.
팀 육아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발견한 거예요. 답은 화려한 계획표나 완벽한 분담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의 손길이 닿는 그 작은 순간들 속에 있다는 걸요.
‘혼자서 잘해낼게’라는 착각이 우리를 지치게 했죠
첫 아이를 맞이했던 그때 기억나세요? 회의 도중에 짬내 분유를 만들던 날들. 그때마다 당신이 ‘방해해서 미안해’ 하던 그 말투, 기억나세요? 그 속에 숨겨진 긴장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어떤 통계보다도 많은 엄마들이 밤중에도 손 안놓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사무실 화장실에서 익숙하게 이뤄지던 핸드폰 쇼핑이나 아이 마스크 팩 봉투 정리하는 작은 손길에 답이 있는지도 모르죠.
팀 육아의 시작은 아마도 이런 걸지도요. ‘내가 다 하겠다’는 그 굳은 결심 대신, ‘오늘은 좀 도와줘도 돼?’라는 말 한마디로 서는 게 아닐까요?
흐트러진 중간에서 우리가 더 단단해지는 순간
아이 유치원 등원 준비하다 뒤엉킨 양말 더미에서 나눈 주말 계획, 샤워타임에 엄마가 머리 감길 때 아빠가 맡은 배수구 감시 임무 같은 소소한 순간들이 참 신기해요. 조사에 의하면 협력하는 부부는 육아 스트레스가 40% 낮다고 하던데, 그 비결은 따로 있나요?
아이 엉덩이 닦다 휘뚜루마뚜루 정한 주말 일정, 새벽 별다방 테이크아웃 한 잔 마시면서 나눈 내일 할 일 목록. 미루는 게 아주 나쁜 건 아니었네요. 가장 멋진 해결책은 의외로 함께 끌어안은 불완전함 속에서 탄생하더군요.
아이가 그린 ‘빨래 괴물 퇴치하는 삼두부모’ 그림 속 메시지, 잊지 않으시죠? 육아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 바로 이것일 테니까요.
서로 흘러내린 틈에서 피어나는 은혜
당신이 일주일간 준비한 유기농 도시락이 훌륭했다면, 내가 서둘러 사온 편의점 과자가 만든 ‘오늘의 행복’ 역시 빛났어요. 가장 부러워할 만한 건, 바로 우리만의 타협이 정답이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걱정 많으신 부모님들을 위한 내용을 준비하다가 발견한 건데요. 완벽함보다는 ‘적당히 좋은’ 부모가 아이에게 더 아름다운 모델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요. 우리 홈파티에서 뒤늦게 발견한 냉동피자와 간장계란밥의 콜라보레이션이 그 증거인가봐요.
이제 보면 다릅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던 당신 어깨보다, 흔들릴 때 나에게 기대던 그 고개 숙임이 더 아름답더군요. 조금 더 넉넉하게 채워지는 우리 식탁처럼요.
우리가 새롭게 써내려갈 밤샘 작업
오늘밤, 아이가 또다시 잠투정 부릴 때면 이렇게 말해보아요. 당신이 업무메일 보내며 아이를 재울 때의 모습을 보고 나는 독한 부모가 아니라 새로운 육아 프로세스를 개발 중이구나 했죠.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라 새로운 과정이라고요.
밸런스를 찾는다는 건 마치 두 사람이 싱크대에 쌓인 접시를 나르며 가끔 실수하더라도 웃을 수 있는 여유라고 생각해요.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내일 아침 대화 한 마디로 시작하는 게 아닐까요.
사랑하는 당신과 내일 아침도, 서로 커피 한 모금 나눌 때면 이 생각을 하고 있겠습니다. 우린 부족함에도 더없이 값진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중이라는 걸요. 그 순간순간이 쌓여 우리만의 이야기가 되니까요.